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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마케팅(끝)] ⑤ AI가 놓치는 마지막 한 수, ‘의도’와 그 다음 / 스카이벤처스 이진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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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6-09-21본문

결국 일을 잘하는 사람이란 시킨 이의 의도를 잘 파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키는 일을 정확하게 해내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왜 이 일을 시켰는지를 이해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B와 C까지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아주 가끔 D가 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다음 단계의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의 생각과 대안까지 가지고 오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어느 순간 그를 단순한 직원으로만 바라보기 어려워진다. 그 사람은 나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물론 시키지 않은 일을 많이 한다고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판단으로 일을 확장한다면 아무리 많은 노력을 들여도 조직에 필요하지 않은 일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업무의 양이 아니라 그 일이 왜 존재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20대 후반, 일본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처음 했던 일은 보석을 거래하던 회장님의 수행비서 겸 운전기사였다. 당시 나는 스스로 목표 하나를 세웠다.
‘내가 사라졌을 때 이 사람이 내 빈자리를 크게 느끼게 하자.’
그러려면 단순히 운전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자주 가는 곳의 주차 공간을 미리 알아두고, 갑자기 이동해야 할 때 빠져나갈 길도 확인했다. 겨울에는 좌석을 따뜻하게 해두었고, 신호에 멈출 때도 뒷좌석의 사람이 불편하지 않도록 부드럽게 정차하려 했다. 방지턱을 넘는 방법도 찾아보고 다른 수행기사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누가 시킨 일은 아니었다. 내가 맡은 일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나와 함께 움직이는 동안 최대한 편하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기 때문이다.
사고의 기준을 바꾸기 위해 이런 질문도 던졌다.
‘회장님이 내 아버지라면 나는 어떻게 할까.’
고용주와 직원이라는 관계에서 벗어나 그 사람을 걱정하는 가족의 입장에 서보니 무엇이 필요한지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나는 그분을 약 1년 모셨고, 일을 그만둔 지도 15년이 지났다. 그런데 지금도 전화를 드리면 반갑게 받아주시고 어려운 일이 생겨 조언을 구하면 이야기를 들어주신다.
시간이 지나 남는 것은 업무 목록만이 아니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가 남는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 나는 반대편 자리에 섰다. 회사를 운영하며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사람이 된 것이다.
어느 날 새롭게 해보고 싶은 사업을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입사 3개월 된 직원 한 명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조사를 지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뒤 그 직원이 자료를 가지고 찾아왔다. 놀라운 것은 자료의 양이 아니었다. 그 직원은 주말을 이용해 실제로 그 업종에서 일을 해보고 왔다.
현장에서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산업의 특성을 정리했고, 사업을 시작한다면 무엇이 필요한지까지 자신의 생각을 담아왔다.
나는 거기까지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거기까지 생각했구나.’
그때 오래전의 내가 떠올랐다. 나는 젊었을 때 누군가의 차를 운전하며 그 사람이 말하지 않은 것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15년쯤 지나 내가 일을 시키는 위치가 되었을 때, 이번에는 내가 요구하지 않은 곳까지 생각하고 직접 행동한 사람을 만났다.
중요한 것은 그 직원이 ‘시키지 않은 일을 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를 생각했다는 데 있다.
나는 그 사업이 실제로 가능한지, 현장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싶었다. 그 직원은 내 말의 표면보다 그 뒤의 의도를 읽었고, 답을 얻으려면 책상에서 검색하는 것보다 직접 현장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 일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지시의 문장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그 지시가 생겨난 이유를 읽는 사람이다. 이 차이는 AI 시대에 오히려 더 중요해질 것이다.
AI는 이미 자료를 찾고, 비교하고, 정리하고, 문서를 작성한다. 앞으로는 A를 요청하면 B와 C를 제안하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D까지 보여주는 AI도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최근 이야기되는 Agentic Marketing도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목표를 주면 AI 에이전트가 필요한 단계를 계획하고 실행하며 결과를 보고 다시 최적화한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는 질문은 더 분명하다. 무엇을 시킬 것인가보다 어떤 목적을 줄 것인가.
나는 AI를 사용할 때도 먼저 생각과 가설을 가지려고 한다. 어떤 현상이 나타났다면 왜 그런지 생각하고, 내가 추정하는 원인을 정리한 뒤 무엇을 검증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리고 그 검증에 필요한 일을 AI에게 시킨다.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무엇을 검증해야 하는지도 알기 어렵다. 결국 AI에게 무엇을 시켜야 하는지도 알기 어렵다.
AI가 사람의 생산성을 극대화한다면 중요한 것은 누구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느냐이다.
사람을 이해하고, 디테일을 발견하고, 맥락을 읽고, 자신의 가설을 세우며, 필요할 때 현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AI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이 AI 시대에 더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시킨 일을 정확하게 해내는 사람도 있고,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도 있다. 모두 필요한 능력이다.
하지만 내가 더 큰 일을 맡기고 싶어지는 순간은 따로 있다. ‘이 사람이 있으면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것까지 볼 수 있겠다.’ 그런 사람은 내 업무를 대신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 생각의 범위를 확장시켜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좋은 직원과 파트너를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내가 시킨 일의 목적을 이해하고 필요한 것까지 준비하는 사람은 좋은 직원이다. 그러나 내가 발견하지 못한 문제를 발견하고, 보지 못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다음 방향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순간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더 많이 일하라는 뜻이 아니다. 시키지 않은 일을 무조건 찾아서 하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먼저 왜 이 일을 하는지를 이해하라는 것이다.
그 의도를 이해하고 사람과 현장을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을 만들다 보면 어느 순간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다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는 그 생각을 빠르게 확장하고 검증할 수 있는 AI가 있다.
그래서 나는 결국 일을 잘하는 사람이란 시킨 이의 의도를 잘 파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의도를 이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것까지 보여주는 사람과 함께 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사람이 있으면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것까지 볼 수 있다.’
나는 아마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을 직원이 아니라 파트너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진웅 스카이벤처스 대표
출처 : 데일리한국 https://daily.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14061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