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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마케팅] ④숨은 의사결정자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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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6-09-17본문

좋은 제품인데도 왜 팔리지 않을까. 많은 기업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소비자부터 들여다본다. 누가 고객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가격을 받아들일지 분석한다. 그런데 때로는 소비자를 아무리 연구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럴 때는 소비자에게 가는 길을 거꾸로 따라가 볼 필요가 있다. 제품을 발견하고, 설명하고, 추천하고, 반대하고, 설치하고, 최종적으로 선택되기까지 그 과정에 누가 관여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그중에는 최종 구매 권한은 없지만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들을 ‘숨은 의사결정자’라고 부른다.
한번은 독특한 모양과 색을 가진 생활용품이 있었다. 소비자에게는 기존 제품과 확실히 달라 보이는 디자인이 장점이었다. 그런데 제품은 좀처럼 팔리지 않았다. 소비자 조사에서 디자인에 대한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제품을 실제로 설치하는 시공자였다. 소비자에게는 새로운 디자인이었지만, 시공자에게는 새로운 작업과 위험이었다. 기존 제품은 익숙하고 설치하기 쉬웠지만, 모양이 특이한 제품은 설치 과정이 복잡했다. 잘못 설치하면 다시 작업해야 하고 그 책임도 시공자가 져야 했다.
해결책은 제품 디자인을 바꾸는 것이 아니었다. 시공자의 불편과 위험을 줄이는 것이었다. 설치 도면과 가이드를 제공하고 필요한 보조 도구를 마련했다. 그러자 판매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소비자에게는 ‘디자인’이었던 것이 시공자에게는 ‘리스크’였던 셈이다.
또 다른 사례가 있다. 건물에 설치하는 CCTV 모니터 시스템이었다. 주변 인테리어에 맞춰 대리석이나 나무 등 다양한 마감재를 적용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제품의 완성도도 높았다. 하지만 기대만큼 팔리지 않았다.
이번에도 건물주만 바라봐서는 답을 찾기 어려웠다. 실제로 제품과 자재, 설비의 선택은 건물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건물주가 최종 사용자라고 해도 그 제품을 처음 발견하고 설명하고 추천하는 사람은 따로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영업 구조를 바꿨다. 건축·설계·시공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적절한 시점에 제품을 건물주에게 보여주고 제안할 수 있도록 했다. 계약이 성사됐을 때 그들에게도 경제적 이익이 돌아가도록 구조를 만들었다.
제품을 바꾼 것이 아니다. 제품이 선택되는 구조를 바꾼 것이다. 제품을 파는 영업사원을 늘린 것이 아니라, 건물을 짓는 사람을 영업사원으로 만든 셈이다.
이 두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하다. ‘누가 소비자인가’만 정의해서는 부족하다. 누가 제품을 발견하는가, 누가 설명하는가, 누가 추천하는가, 누가 반대하는가,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가, 누가 설치하는가,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를 함께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제품을 다시 바라봐야 한다.
‘내가 시공자라면 왜 이 제품을 꺼릴까?’
‘내가 설계자라면 왜 익숙하지 않은 제품을 추천해야 할까?’
‘내가 판매자라면 이 제품을 선택했을 때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까?’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숨은 의사결정자의 욕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사람에게 이득은 무엇인가. 무엇이 귀찮은가. 무엇이 두려운가. 그리고 무엇을 욕망하는가.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설득하는 데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그 사람이 자연스럽게 제품을 선택하고 추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불편과 위험을 줄이거나, 선택했을 때 얻는 이익을 분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페르소나는 이 과정에서 유용한 도구다. 하지만 페르소나가 답은 아니다. ‘시공자는 이런 사람일 것’이라고 책상 앞에서 만들어낸 가설을 실제 현장에서 확인해야 한다. 직접 만나고, 질문하고, 작업 과정을 보고, 우리가 놓친 불편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AI는 이 과정에서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구매 여정을 정리하고 이해관계자를 찾아내며 예상되는 반론과 동기를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AI가 만들어낸 ‘시공자 페르소나’와 실제 현장에서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이는 시공자는 다르다. AI는 가설을 빠르게 만들어줄 수 있지만, 그 가설이 현실에서 맞는지는 사람이 확인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소비자를 더 정교하게 분석하는 데만 있지 않다. 소비자에게 도달하기까지의 길을 따라가 보는 것이다.
그 길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서 있다. 누군가는 추천하고, 누군가는 반대하고, 누군가는 설치하고, 누군가는 책임진다. 그중 한 사람의 작은 불편이나 두려움이 제품의 판매를 막고 있을 수도 있다.
좋은 제품이 팔리지 않는다면 소비자만 바라보지 말자. 제품이 소비자에게 가는 길을 따라가 보자. 그리고 그 길 어딘가에 서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AI가 아직 알려주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의 현실이다.
숨은 의사결정자를 찾아라.
출처 : 데일리한국 https://daily.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1406149
